가족 이야기

올바른 가치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다.

오성우 2025. 6. 24. 16:20

장인어른 기일이었다. 두 아들이 중학생이 된 후로 최근 몇 년간은 나와 아내만 처가댁을 방문했다. 두 아들은 학원 스케쥴이나 다음 날 학교 일정 때문에 함께 가지 못하고. 오랜만에 또래 친척들도 함께 모이자는 결의가 있었고, 2025년에는 두 아들도 함께 충남 보령으로 출발했다.

설 이후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 꽃이 피었다. 각자 어떤 이슈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지 다양한 내용들이 튀어나왔다. 청년은 취업 준비로, 고3은 입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1학기를 마치고 방학하자마자 집에 내려온 조카는 조만간 있을 과팅에 설레인다고 했다. 전날까지 전국 배드민턴 대회에서 안간힘을 써서 허벅지 부상은 입었지만 2위라는 쾌거를 이룩한 중2 청소년은 어느덧 변성기가 와 있었다. 또 다른 중2 청소년은 최근 옮긴 학원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른들은 청소년과 청년처럼 역동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평범한 일상들을 잘 살아내고 있었다. 본인에게 맡겨진 일들을 하면서도 매일 하루에 28km 내외를 뛰는 큰 형님은 벌써 올해 연말에 은퇴라는 소식을 들었다.

제사의 모든 절차를 마치고 맛있는 식사 후 뒷 정리를 하고 장모님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정성들을 받아들고 늦은 밤 10시경에 집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차에서는 아까 가족들끼리 나누었던 이야기 꽃의 여운을 계속 나누는 또 다른 이야기 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십여분쯤 흘러 고속도로에 막 진입했을 즈음에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말했다.

"너는 OO누나가 다니는 가천대학교가 어딘지 모르지? 거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고3 입시에 한참인 고등학생과 달리 중학교생인 작은 아이는 아마도 잘 몰랐을 것이다. 아직은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기에. 묵묵부답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모르지. 쟤가 어떻게 알겠냐~ 근데 너 동생을 좀 깔보고 조롱하는 것 같다"

말이 끊나자 마자 발끈한 큰 아이는 억울한 듯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이후에 몇 분 더 내 생각과 관점을 쏟아 놓았다. 내 아이를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하거나 누군가를 깔보는 사람으로 낙인찍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나눈 큰 아이와의 카톡을 통해 나는 내 모습과 태도를 성찰해보았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상대방이 그렇게 느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다음날 저녁 나는 아내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며, 어제의 사건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어제는 내가 둘째의 모습에 조금 더 감정이입이 되어서 큰 아이에게 말한 것 같아. 그리고 말을 할 때 조금 더 찬찬히 설명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게 내 잘못인 것 같고. 나는 사회복지와 청소년 활동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통 사회적 약자 편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는 둘째가 힘든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둘째는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내가 좀 예민하고 민감하게 판단했던 것 같아"

차 안에서의 대화 사건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내 가치관과 삶의 태도,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한층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갈 계기가 되었다. 사실 사회적 약자나 어려운 이에 대한 배려나 그들을 돕는다는 가치 그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약자에 대한 민감성과 그에 따른 옹호와 행동은 아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전하고 소통하는 내 방식, 태도가 문제였던 것 같다.

"날 자주 보고 나랑 자주 얘기하는 엄마가 이런 말을 했으면 듣는 척이라도 했을 거 같은데 맨날 늦게 들어와서 나랑 얘기도 거의 안하고 가끔씩만 나를 보는 아빠가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 내리는 게 너무 싫었어. 그냥 화가 나고"

큰 아이가 내게 보낸 카톡 내용으로 지속적인 소통의 과정이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봤다. 그리고 앞으로 더 노력하는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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