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버려진 때타올과 녹슨 면도기

오성우 2017. 11. 17. 13:49

초등학교 시절 주일 아침마다 아버지와 목욕탕을 갔다.

한 주간 묵은 때를 따뜻한 물에 불려,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때를 밀 때쯤 아버지는 나를 때 미는 테이블(?) 위에 누우라고 하시고는

꼭 목욕탕 한 구석으로 가셔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겨오셨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람들이 1~2번 쓰고 버린 때타월 중에서 쓸만한 것을 찾으셔서 깨끗이 세척한 후,

가져오시고는 그것으로 때를 밀어주셨다. 그 당시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셨다. 절약 정신이 투철하셨던 거 같다. 나는 그게 아무렇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이후, 아버지와 시간이 맞지 않을 때, 나는 종종 혼자 목욕탕에 갔다. 그리고는 나도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했다. 충분히 몇 번 더 쓸 수 있는 타월들이 많았다.

 

오늘 아침(20171117) 일이 있어 아버지 집에 방문했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세면대에 면도기가 하나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녹이 많이 슬어있었다. 일회용 면도기를 몇 번 세척해서 쓰신 것 같았다.

아버지, 녹슨 면도기로 면도하시다가, 상처나시면 파상풍 걸리세요. 제가 일회용 면도기 사다드릴께요.”

이렇게 말하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의 그 때타월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왜 이리 궁상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절약하는 아버지가 더 자랑스러웠다.

자신에게 쓰는 것은 그렇게도 절약하시면서도 자녀나 본인의 형제, 자매들에게 사용하는 돈은 아낌없이 쓰신 아버지.

 

이제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아내의 남편이 되었으며, 주변에 챙겨야 할 가족들이 생겼다. 아버지처럼 잘 할 수는 없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본 받아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때타월과 면도기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절약정신과 가족 사랑이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