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 띠리릭
AM7:30.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우리 집 문이 열렸다. 150cm 남짓한 작은 체구인 어머니의 한 손에는 축 늘어진 에코백이 들려있었다. 15년째 한결같은 방문이다. 사랑하는 손자, 며느리, 아들의 아침, 저녁 식사를 책임질 반찬이나 음식들을 챙겨왔다.
우리 식구들은 학교와 직장에 가기 전에 얼굴을 씻고, 화장실에 가며, 준비물 등을 챙기느라 분주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차분하면서도 빠른 손놀림으로 식탁을 행주로 닦고, 밥과 반찬을 놓고는 한 마디 하셨다.
"주영아, 주원아. 밥 먹어라."
아침부터 스마트폰에 집중 하고 있는 손자들에게 할머니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큰 아이는 아침식사 생각이 없다며 그냥 안 먹고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줄기차게 밥 먹어야 위도 상하지 않고 공부도 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끝까지 뭐라도 먹이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떠난 텅 빈 집에 어머니는 혼자 남아 마치 게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듯이 다른 일을 시작했다. 여기 저기 벗어놓은 아이들의 잠옷과 어질러진 책상을 정리했다. 가끔은 빨래 통에 가득 찬 빨래들을 세탁하여 널었다.
한바탕 일을 마친 어머니는 전진 기지라고 할 수 있는 당신 집으로 돌아가 또 다른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누나는 맞벌이 가정은 아니어서 조카를 직접 돌보고 있지만, 일본에서 거주하다 한국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살림이 서툴다. 어머니는 누나네 가족을 위한 반찬과 음식을 우리 집과 똑같이 하여 날마다 배달해주었다. 아버지는 늘 운전 기사를 자처하셨다.
점심 때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신 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제서야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어머니는 세 번째 장소로 이동했다. 개정에 사시는 80대 후반의 노모가 드실만한 음식과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서. 개정은 어머니가 나고 자란 동네다. 예전에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아팠을 때, 나는 외가에서 몇 개월간 살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안부를 물으며 항상 별일은 없는지 물어봤다. 때로는 집을 청소해주거나, 간단한 밭일을 돕기도 했다. 그 곳에 있는 동안 해는 어느 새 중간을 지나 서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좀 쉬실 법도 한데,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셔서 다시 한번 맞은 편 동에 거주하는 우리 집을 방문했다. 둘째 주원이가 하교 후 집에 돌아와 손은 잘 씻었는지 확인도 하고, 간식도 챙겨줄 요량이었다. 이 일을 마치셔야만 어머니의 세 집 살림은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공간이었다. 당신 집을 정리하고 나서 어머니는 두 분이 드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셨다. 저녁을 드신 후에는 설거지를 하시고, 다음 날 세 집을 위한 음식과 무언가를 또 준비하고 계시는 어머니는 마치 24시간 꺼지지 않는 편의점의 불빛과 같았다.
아주 작은 빛이라도 그 빛은 어두움을 한 순간에 물러가게 한다. 어쩌면 어머니의 사랑의 빛이 자녀들과 손자 그리고 본인의 부모님께 계속 향해 있었기에 우리들이 어려움과 힘듦을 느끼지 못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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