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꼭 가야 해? 안 가면 안돼. 나 두고 가지마-‘갯마을 차차차’ 보다가 떠오른 대성통곡 했던 그 날의 스토리-

오성우 2021. 11. 10. 10:04

"왜 이렇게 쳐다봐? 어. 나 이 눈 알아. 이거 되게 울고 싶을 때 보이는 눈빛인데... 홍반장 울어? 울지 마."
"가지마. 나만 두고 가지마.(울음)"
 
아내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속 한 장면에 푹 빠져 있었다. 못하는 일이 없는 남자 주인공인 홍두식은 바다 마을 '공진'에서 홍반장으로 불린다. 현실주의 치과의사 윤혜진과의 티키타카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속 홍반장에게는 속사정이 있다.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직접 시청해보시기를 권한다.
 
나는 TV화면 속 두 사람의 취중진담 장면에 푹 빠져 있던 아내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던지 아내는 내 쪽으로 고개를 잠시 돌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자기야. 저 장면 보니까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음... 알 것 같다. 그 때 차 안에서 일어났던 일 말하려는 거지?"
 
아내는 충청남도 보령 남포면에서 태어나 자랐다. 이름은 윤정원. 고등학교 졸업 후 한의원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자신이 진짜 배우고 싶었던 유아교육학을 전공하기 위해 군산으로 왔다. 그 때 정원의 나이는 23세였다.
 
시골의 오남매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형편이 넉넉지는 않았다. 대학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오전에는 일을 했고, 야간에 학교를 다녔다. 당시 정원에게 방학은 다음 학기 준비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나는 매일 정원이 학교를 마칠 시간인 밤 10시경 쯤 아버지 차를 가지고 교문 앞으로 갔다. 차 안은 최고의 데이트 장소 중 하나였다.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댔다. 가끔은 간식을 사서 먹기도 했다.
 
"자기야. 나 이번 방학 때, 보령 가서 한 달간 알바하고 오려고. 영미네 가게에서 밤7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서빙하는데, 100만원 정도 벌 수 있을거 같아"
 
아내의 친구 부모님은 대천해수욕장에서 조개구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름 휴가철 때면 항상 일손이 부족했고, 함께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거 꼭 가야하는 거야? 새벽까지 일하면 위험하기도 하고, 한 달 동안 자기 얼굴 못 보는거잖아"
"영미랑 같이 일하고, 잠도 걔네 집에서 잘 거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너무 걱정마."
 
대화를 이어가던 중 내 가슴속에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꾹꾹 힘주어 누르는 중이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내 마음과 행동은 완전 다르게 정원에게 생떼를 쓰고 있었다.
 
"진짜 꼭 가야 해. 그냥 군산에서 알바 구하면 안 돼? 아니다. 그냥 무조건 가지마."

평소와는 다른 내 모습에 정원은 당황했고, 나는 차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웃음과 대화 소리로 가득했던 차 안이 마치 교회당 예배 시간처럼 되었다.
 
"자기야. 나 진짜 잘 다녀올게. 전화도 매일 매일 하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고 화도 풀어. 응?"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화낼 입장도 아니었고, 그럴 자격이 있었나 싶다. 방학 동안 다음 학기 대학 등록금이랑 생활비 벌러 가겠다는 사람을 몰아붙였으니, 당시 나는 엄청나게 철이 없었던 게 맞다.
 
이제 그만 화 풀라는 정원의 말에 계속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날 나는 차 안에서 서럽게 울었다. 아마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 그 장면을 봤다면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셔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원은 꺼이 꺼이 울고 있는 나를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고, 어릴 적 내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는 매우 아팠다. 나는 외할머니와 이모들 손에서 자랐고,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들었다. 내가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엄마 품을 떠나야만 했던 아이의 마음은 아마도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초등고등학교와 청년 시절 헤어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늘 져 주거나 양보하곤 했다. 행여나 '그들이 나를 떠날까'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다음 편 예고와 함께 드라마 O.S.T가 흘러나왔다. 나는 아내에게 "아까 그 상황 예전 내 모습하고 많이 비슷했지?"라고 물었다.
 
"그 때 자기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지. 자기의 울음을 보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
 
당시 내가 왜 그렇게 통곡을 했는지 완벽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온 몸으로 표현했던 모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올 때 똑같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나의 전심을 다하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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