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명예를 중시해야 한다는 뜻을 가진 문장인데, 많은 이들이 후세에 이름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존재 정도는 기억되기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공동체를 떠나거나, 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함께 했던 이들과 계속하길 원하는 마음이 반영된 건 아니었을까!
요즘 내 앞에 닥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기억’에 대한 소회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건지, 누구를 기리고 회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청소년자치연구소 라는 청소년 활동 단체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활동가이다. 연구소는 청소년 자치공간 ‘달그락 달그락’을 운영하고, 연구소의 법인은 들꽃청소년세상이다. 들꽃에서는 청소년자치연구소 뿐 아니라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EXIT)나 청소년자립팸 이상한 나라 라는 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2021년 법인 종무식 순서 중 10년 간의 엑시트와 자립팸 활동을 마감하면서 소회를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활동가는 그 동안 진행해 온 활동의 관점, 철학, 행동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기억한다는 건 자신들이 해 온 활동을 계속 이어서 해주는 것이라는 활동가의 말이 하루 종일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종무식이 마쳐지자마자 개인SNS에 내 생각을 남겨 보았다. 언제까지 달그락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성우'라는 이름만을 많은 이들에게 기억시키는 게 아닌, 나를 통해 청소년 자치활동의 중요성이나 청소년 시민성과 참여의 의미들이 더욱 기억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관련 일들이 행해지며 기억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는 글을 남겼다.
‘기억’에 대한 생각은 가족들과 함께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고 나서도 이어졌다.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누군가를 돕는 것은 모두를 돕는 것이다”라든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였지만, 나에게는 기억하거나 기억된다 라는 것에 대한 생각의 확장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어떤 선택과 그에 따른 이후의 일들이 펼쳐지는데, 나는 여기에서 기억된다는 것의 본질을 고민했다. 더 얘기하면 스포가 될 거 같아 이 정도에서 멈추고,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생각과 판단을 해보시길 권한다.
내가 30여년간 다닌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는 올 해 12월26일자로 은퇴를 하신다. 교회에서는 은퇴식에 맞추어 나에게 감사 편지 작성과 낭독을 부탁했다. 편지를 작성하면서 내가 요즘 정리한 온 ‘기억’에 대한 관점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공식적인 은퇴식 이후에 현직에서는 물러나시겠지만, 저와 OOO교회 성도님들은 목사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목사님의 성함과 해 오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서, 목사님이 평생 성도님들께 손수 보여주셨던 믿음의 모습과 가치를 우리들이 이어받아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글의 초반에서 나에게 질문했던 “나는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건지, 누구를 기리고 회상하고 있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시간이 된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서 작은 도움이나마 되며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으며,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항상 내 마음 속에 담고 살아왔다. 사람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어 온,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보다 책임을 더 지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따르고 싶어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존재들에 의해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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