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

[아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오성우 2017. 7. 29. 00:12

[아픔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내 나이 열 다섯 살 때, 약 5시간에 걸친 중이염 수술을 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코 혈관에 생긴 종양인 혈관섬유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약 3시간 했다. 혈관섬유종 수술 전에는 혈관차단술이라는 수술도 했었다. 그 이듬해 나는 친구랑 농구를 하다가 빠진 이를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여서는 두 번에 걸친 비염 수술을 했다. 약 6~7년 동안 참 많이도 아팠다. 아프고 수술 하는 시기에는 기분이 울적했고,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있는지에 대해 내가 믿는 하나님께 울고 불며 기도도 많이 했었던 기억이 있다. 한참 아팠던 시기로부터 약 15년이 흐른 지금, 그 때의 아픔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단순히 아픔의 기억만 간직한 것일까? 그 아픔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열 다섯 때, 첫 수술을 마치고 난 다음에 어느 장애인 시설에 자원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1995년도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해부터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년간 몇 시간을 봉사활동해야하는 제도가 생겼다. 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나는 누군가를 도우며 사는 이런 류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중고교 시절 시간이 흘렀고, 그런 나의 마음은 실제 대학교에서 발현이 되었으며,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여,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나는 지금 두 아들의 아빠이자, 한 아내의 남편이다. 두 아이 중 둘째 아이는 9개월만에 세상에 나왔다. 빨리 이 세상을 보고 싶었나보다. 그래서였는지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열경기로 인해 의식을 잃었던 적도 두 번이나 있었고, 두 살 때는 소파에서 떨어져 뇌출혈이 있었다. 다행히 7세가 된 지금 특별히 건강에 이상은 없다. 부모가 되어 아픈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마다 내 옛날 아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내 아픔에만 집중했었는데, 부모가 된 후에는 내가 아팠을 때, 나보다 더 아파했을 부모님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참사랑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말로 철이 조금 들었다고나 할까?


최근 여러 언론에서 국내 유일의 소아조로증 환우 홍원기(11세) 군이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 역을 맡은 톰 홀랜드와 만난 이야기를 다루었다. 평소 스파이더맨을 정말 좋아했던 희귀난치병을 가진 홍원기 군이 실제로 그 주인공을 만난 게 큰 이슈였던 것 같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기 군은 당당하게 자신의 꿈이 인터넷 방송 BJ라고 말한다. 그리고 원기 군의 아버지는 “네. 그런데 정말 제 소원은... 음... 스무 살 넘겨보고 싶고... 음... 가능하다면 서른 살 넘겨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지금처럼 머리카락 없고 키도 한 1m밖에 안 돼도 그냥 그렇게 제 곁에서 좀 오랫동안 살아 있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한다. 이에 라디오의 PD는 두 분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질 것을 응원하겠다고 한다. 원기 군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과연 아픔만 있을 것인가?


2017년 초여름의 시작을 두 명의 사회복지 실습생과 함께 하게 되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120시간 이상의 시간을 사회복지실천 현장에서 실습을 해야하는 제도가 있는데, 그 실습에 참여하기 위해 청소년자치연구소에 두 명이 대학생이 온 것이다. 실습 첫 날, 실습 시작 시간보다 약 1시간을 일찍 온 실습생 한 명이 있었다. 모자를 쓰고 온 그 실습생은 나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토피 라는 질병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 위해 일찍 왔다고 하며, 이마에 있는 아토피 때문에 종종 모자를 써도 될지에 대해 물었다. 그에 대해 나는 그런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 만큼 선생님의 이마가 이상해보이지 않은데요. 모자는 쓰셔도 좋고, 벗어도 좋습니다. 다만 상황과 환경에 따라 하시면 좋겠어요. 더 힘내시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외면의 모습보다 내면의 힘과 자신의 역량이 더 중요하니까요”

2~3일이 지난 후, 아침이었다. 모자를 벗고 온 실습생 선생님이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국장님, 저, 당당하게 모자 벗고, 다녀보려고 해요. 아직은 약간 어색하지만, 노력해보려고 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실습생 선생님에게 긍정적 변화가 시작된 거 같았다.


실습 과정 중 어느 날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신 소장님께서는 실습생 두 명과 함께 산책을 다녀왔다.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오시며 소장님께서는 “OO이랑 산책할 때는 주의해야겠네요. 혈관확장증이라는 질병이 있어서 많이 걷지는 못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 오후, OO 실습생은 “아까 소장님께 얘기 들으셨어요?”라고 얘기하면서 옅게 미소를 보이십니다. “네 선생님. 소장님께 얘기는 잘 들었고요. 선생님, 오늘 산책 다녀온 건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더니, “네, 천천히 걸으면 괜찮아요”라고 하며, 밝게 웃으신다. 이후 청소년자치연구소 실무자 워크숍에서 실무자 간 자기 개방의 시간이 있었다. 그 워크숍을 참관했던 OO 실습생에게 우연히 그녀의 삶에 대한 어려움을 듣게 되었다. 그런 어려움을 딛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조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며, 악착같이 견뎌야겠다는 내 안의 열심히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선생님께 우리 연구소 실무자들은 위로와 지지로 서로를 격려했다. OO 선생님은 현재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며, 3D 프린팅 관련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청년 C.E.O이다. 여전히 그 선생님에게는 치유되지 않은 아픔도 있겠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려는 모습을 실습 내내 볼 수 있었다.


  김양재 목사님이 쓰진 ‘고난이 보석이다’라는 책이 있다. 책의 내용은 차치하고, 제목만 보면, 이 문장에는 생각할 지점들이 많은 것 같다. 한편,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한 기회 라는 말의 줄임말 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다.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장 힘든 시기가 어쩌면, 가장 많은 배움이 있는 시기이며, 진짜 감사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앞으로 아픔, 고난, 위기를 대하는 자세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삶은 사실 기쁨과 슬픔, 건강과 아픔, 풍성과 빈곤의 연속선상에 있다. 기쁘고, 건강하며, 풍성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아픔과 슬픔의 순간에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진주조개에 모래 한 알을 넣어주면 조개는 고통의 시간 끝에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를 탄생시킨다고 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아픔과 힘듦의 과정 속에서도 결국은 영롱한 우리의 꿈, 비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굳게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면 좋겠다.